장면 — 트로이의 왕비였던 헤카베가 나라와 자식을 모두 잃고 폐허 위에서 운명을 통곡하는 장면
연기 포인트 —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밑바닥 슬픔이므로 감정의 크기 경쟁이 아닌 깊이로 승부해야 한다
독백 전문
일어나라, 불행한 것아. 땅에서 머리를 들어라. 목을 세워라. 여긴 이제 트로이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트로이의 왕족이 아니야. 운명이 바뀌었으니 견뎌라. 물결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라. 뱃머리를 운명의 파도에 맡기고, 거슬러 항해하지 마라. (사이) 아아, 통곡하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나. 조국이 없고, 자식이 없고, 남편이 없는데. 조상들의 그 드높던 영광이여 — 다 꺾였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무엇을 침묵하고, 무엇을 곡해야 하나. 이 딱딱한 잠자리에 뉜 늙은 몸뚱이가 어쩌면 이리도 비참한지. 아, 내 머리야, 내 관자놀이야, 내 옆구리야. 몸이라도 뒤척이고 싶구나. 이쪽으로, 저쪽으로, 끝없는 눈물의 노래에 몸을 맡기고. 이것도 불행한 자에겐 음악이지 — 춤이 될 수 없는 파멸을 노래하는 것도. (사이) 나는 헤카베. 왕들의 어머니였다. 프리아모스의 아내였고, 이 몸으로 누구보다 뛰어난 아들들을 낳았지. 그 아들들이 그리스의 창 아래 쓰러지는 것을 하나하나 다 지켜봤다. 남편은 제 집 제단 앞에서 도살당하고, 도시는 불타고, 딸들은 — 내가 고이 길러 시집보내려던 딸들은 내 품에서 뜯겨나가 적들의 노리개가 됐어. 그리고 나는, 이 백발의 늙은것은, 어느 그리스 놈 집의 문지기로, 헥토르의 어머니가 빵이나 굽는 종으로 팔려간다. (사이) 그래도... 일어나야지. 일어나라, 헤카베. 곡하는 것밖에 남은 게 없어도 — 곡할 입은, 아직 남아 있으니.
이 작품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자유롭게 연습·공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